본문 바로가기

잡다한 이야기

부산의 감전동 속칭 "뽀뽀로마치" 유래. 포플러의 길. 포프라 마치, "뽀뽀로마치" "뽕뽀로마치" "뽀뿌라마찌" 다양한 이름. "방석집"의 유래를 알아보자.

부산의 감전동 속칭 "뽀뽀로마치" 유래. 포플러의 길. 포프라 마치, "뽀뽀로마치" "뽕뽀로마치" "뽀뿌라마찌" 다양한 이름. "방석집"의 유래를 알아보자.

 

 

 

 

 

부산의 감전동 속칭 "뽀뽀로마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곳을 그냥 음란한 향락의 거리로
알고계시는데....

참...알고보면 역사의 비극과 여인들의 한숨과 눈물이
은은히 서려있는 거리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확인하세요.

 

[구글광고]

 

 

 

 원어는 "포프라 마치"...가로수로 포플러 나무가 심어져 있는 거리...라는 뜻의 일본말이다
이걸 잘못 부르는 말이 "뽀뽀로마치" "뽕뽀로마치" "뽀뿌라마찌"등
다양하다...부산 사람들도 부르는 말이 다 다르다...하지만 어떤걸로
부르든 다 알아먹는다....(저 부산서 10년 살었어유~~)

일제시절 부산은 일본과 가장 가까운 항구이었으므로
많은 일본인들이 부산에 살고 잇었으며
그중 특히 감전동 "포프라 마치"는 일본인들이 자주찾는
술집..일본식 기생집들이 밀집되어있는 거리였다...

 

 

동영상과 사진은 아래 링크에 있습니다.

 

[구글광고]

 

왜 그 다다미 방에 앉아 술 먹으면서 앞에서는 늙은일본기생(게이샤)가
기타 비슷하게 생긴 일본악기를 들고 노래하고
옆에서는 젊은일본기생이 술시중 들어주는....일본 기생집...

해방이 되고 일본인들은 물러갔지만 술집건물과 일부 한인기생들은 남았다...
거기에다가....

6.25의 발발로 수많은 피난민들이 부산땅으로 들어왔는데...
그중엔 과부,홀로된 처녀등등 홀로된 여인들또한 부지기수였다...
그들은 목숨은 부지해서 부산땅에 들어왔지만
앞으로 먹고 살일이 막막했다...
그당시 여자가 혼자서 먹고살수있는 방법은 하나 뿐이었다...

술팔고 몸파는 것.......

전쟁통에 홀로 된 여자들은 아직 비어있는 일본식 술집건물이 많은
감전동 "포프라마치"로 모여들기 시작했고
그곳에서 먹고살기 위해...술을 팔고 몸을 팔아야 했다...
"방석집"의 유래도 여기에서 생긴 것이다...
다다미 건물에서 술 마시려면 방석깔고 앉아서 마시니깐....

지금은 포플러 나무도 전혀 없고 다다미 건물도 다 없어졌지만
그때 그 이름만은 남아서 지금도 그 한과 눈물의 역사를 은은히 더하고 있다....